2021.09 「제3의 과제전 리플렛」, 강수빈 + 「장한이 작업에 대한 소고」, 장혜정,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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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이는 일상의 다양한 생각과 깨달음을 객관화된 조형 언어로 옮기는 것에 관심 있다. 이번 작업의 연결고리 또한 주변 환경 및 관계에서 파생된 감정들이다. 작가는 평소 곱씹는 생각과 순간적인 감상을 치밀하게 기록하고, 이로부터 스케치를 시작하여 작업의 툴을 마련한다. 먼저 즉흥적으로 작업의 소재들을 수집한 후, 이를 짜임새 있게 분류하고 여과하여 도식화된 기호들을 남기는 것이다. 그 결과 화면 위를 부유하는 간결한 형상들의 기반에는 쉬이 코드화될 수 없는 직관의 흔적이 자리하게 된다. 관계에서의 갈등과 모순되고 양가적인 입장, 근심과 혼란을 야기하는 각종 상념들은 다채로운 색과 형태의 기호들로 대체되고 가려진다. 또한 작업의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이미지를 되풀이하는 응축과 반복의 과정을 실험하기도 한다. 작가는 화면의 조각들을 별도로 분리하여 재해석하거나 동일한 기호를 중첩 및 나열하며 그가 감각하는 세상을 구성해 나간다. 이로써 나타난 규칙적이고도 생동한 리듬은 경쾌한 기운을 자아내는 한편, 긴 제목 속엔 복잡하고 소란한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 이처럼 장한이는 자신의 내면을 한차례 정제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스스로를 다독이고, 동시에 우리 주변을 떠다니는 익숙한 감정을 섬세히 헤아리며 공감하고 위로하는 세상을 꿈꾼다. (플로어맵 브로셔 발췌)
장한이는 일상의 다양한 생각과 깨달음을 객관화된 조형 언어로 옮기는 것에 관심 있다. 이번 작업의 연결고리 또한 주변 환경 및 관계에서 파생된 감정들이다. 작가는 평소 곱씹는 생각과 순간적인 감상을 치밀하게 기록하고, 이로부터 스케치를 시작하여 작업의 툴을 마련한다. 먼저 즉흥적으로 작업의 소재들을 수집한 후, 이를 짜임새 있게 분류하고 여과하여 도식화된 기호들을 남기는 것이다. 그 결과 화면 위를 부유하는 간결한 형상들의 기반에는 쉬이 코드화될 수 없는 직관의 흔적이 자리하게 된다. 관계에서의 갈등과 모순되고 양가적인 입장, 근심과 혼란을 야기하는 각종 상념들은 다채로운 색과 형태의 기호들로 대체되고 가려진다. 또한 작업의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이미지를 되풀이하는 응축과 반복의 과정을 실험하기도 한다. 작가는 화면의 조각들을 별도로 분리하여 재해석하거나 동일한 기호를 중첩 및 나열하며 그가 감각하는 세상을 구성해 나간다. 이로써 나타난 규칙적이고도 생동한 리듬은 경쾌한 기운을 자아내는 한편, 긴 제목 속엔 복잡하고 소란한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 이처럼 장한이는 자신의 내면을 한차례 정제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스스로를 다독이고, 동시에 우리 주변을 떠다니는 익숙한 감정을 섬세히 헤아리며 공감하고 위로하는 세상을 꿈꾼다. (플로어맵 브로셔 발췌)
강수빈 / 2021 사루비아 인턴
장한이의 작업에 대한 소고
조금 파인 웅덩이, 약간의 무게를 가진 듯한 물체, 서서히 피어오르는 기체, 익숙한 듯하지만 규정할 수 없는 형태들은 장한이의 그림 안에서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어디쯤, 마냥 화창하지만은 않은 분위기 속에 위치한다. 아마도 이것은 장한이가 말하는 “생각할수록 복잡해지는 마음”의 모양과 자리일 것이다. 그 마음은 ‘나쁜 말은 다시 되돌아온다', ‘그때 잠들었어야 했는데', ‘잔잔하게 짓누르면 싹이 터' 등과 같은 제목을 통해 감지할 수 있듯이 대부분 미련, 후회, 반성, 포기, 상처 등의 단어로 불릴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아주 큰 낙담이나 슬픔이라기보다는 다음 날을 더 잘 지내보기 위한 작은 진동을 가진 스스로의 다짐이나 다독거림에 가깝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겨나온 완벽히 파악하기 어려운 이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며칠이고 뒤숭숭하고 심란하게 장한이를 괴롭힐 것이다. 두고두고 새기듯 되뇌는 생각과 감정은 종종 왜곡되고 변질된 모양과 상태로 우리에게 남겨지기도 한다. 마치 몇 해가 지난 과일 청이 유리병 바닥에 돌멩이처럼 굳어 쉬이 긁어내 지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진 심상은 간혹 우리를 끊임없이 힘들게 하기도 한다. 장한이의 작업은 그의 생각이 더 복잡해져 더 견고하게 박혀버리기 전에 소거하거나 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한 노력일 수 있다.
그러므로 속도와 반복의 개념은 장한이의 작업의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한이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작아지고 커지고 더해지고 빠지는 자신의 감정과 고민의 요동과 빈번함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마음들이 왜곡된 형태와 성질로 변할 때까지 방치하지 않기 위해, 화면에 옮기면서 발생하는 시차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교칠 대신 밀풀질을 하고 호분칠 대신 백토를 활용하며, 원하는 선명함과 밀도를 단시간에 획득하기 어려운 동양화의 기법과 재료적 특성으로 더 유예될지 모르는 시간의 격차를 좁히고, 여러 날을 두고 그리기보다는 한숨에 그려낼 수 있을 38 x 50센티미터의 작은 화면에 집중한다. 그러니 이 작은 그림은 그날그날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는 일기이며 장한이가 마주한 환경이자 만들어내는 조건을 함의한다.
자주 한다는 것,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은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더 이상의 질문이 의미 없을 만큼 당연해지기도 하지만 불쑥 한없이 낯설어 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도 있다. 같은 자리에 반복적으로 무심히 그리는 선은 문득 어떤 형상으로 떠오른다. 여러 장 그리고 여러 번 색을 쌓다 보면 호명할 수 있는 감정과 부를 수 없지만 계속해서 내 안을 맴도는 감정 사이에서 모호하게 배회하던 형상이 불현듯 또렷해지기도 한다. 그 스스로 서사를 갖게 되는 순간이다.
장한이가 자신의 마음을 기록하기 위한 적절한 속도를 찾으며 반복적으로 화면을 채워가는 일은 규정하기 어려운 형태와 무게의 대상이 조금 더 분명해지거나 각자의 확고한 무게를 갖게 되는 어느 순간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그 순간은 그림자를 가졌지만 위태로운 형상이 질문이 필요 없어지는 자리와 모양을 찾게 되는 때이며, 이미지와 언어가 서로를 이해시키거나 추측하기 위한 역할을 벗어나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때일 것이다. 장한이가 머지않아 그 순간을 맞이하길 기대한다. (사루비아 비평 매칭 프로그램 中)
장혜정 /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