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 「마음서가: 장한이의 서고를 열며」, 조유경, 유영공간


삶에서 생기는 수많은 관계와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사건들, 납득이 안되는 상황들, 해소되지 않는 감정들을 우린 끊임없이 마주하며 살아간다. 장한이는 이 자연하지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상황과 감정들을 마주할 때마다 최대한 객관적인 지표로서 바라보려 노력하며, 감정과 떠다니는 생각의 순간들을 곱씹고, 또 곱씹어 내면의 감각에서 떠오르는 언어들을 표면으로 끌어내어 관찰하며 글로 기록한다. 글로서 시작된 기록들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선으로, 면으로, 도형들로 이미지화되고, 그 이미지들은 작가의 붓질을 통해 도상 기호1)로 변환된다. 이 과정들이 무한히 반복되고, 그려진 그림들은 작가만의 ‘마음’ 분류법을 통해 나눠지며 거대한 장한이의 ‘마음 서가’가 채워져간다.

나는 내 마음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며 계속해서 곱씹어 생각하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보고, 정답을 찾아가 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해가 되는 지점이나, 떠오르는 상상, 비슷한 상황들이 떠오른다. 그것들에 나의 마음을 숨겨 담아 이미지로 치환한다. 이미지라는 형체를 갖추게 된 나의 마음들은 그림 안에서 반복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그 의미를 서서히 잃게 된다. 나를 괴롭히던 질문들도 의미가 없어지고 내 머리를 떠들던 생각들도 겹쳐지고 쌓이다가 그 무게를 잃게 된다.2) -장한이 작가노트에서-

작가는 작가만의 시선으로 만들어내는 여러 도상적 그림들을 동양화의 장르로서 풀어내며 작업하는데, 이번 전시에선 동양화의 장르 중 책을 비롯하여 당대의 수집품들과 태도 소망들을 그리던 "책가도"의 형식인 ‘나열식 책가도’3), ‘서가식 책가도’4),’벽장문 책가도 '5)등의 책장 형태의 틀을 빌려 감정의 서고들을 분류하며 정리한다.

장한이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글로 정리된 그림의 소재들을 정리하여, 화판에 들어가게 될 선, 색감, 형태들을 미리 구상한다. 작업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나 감정들 중 하나의 소재를 정하여, 그림 하나에 하나의 이야기가 되게 풀어낸다. 작업마다 작가가 구성해낸 이야기에 맞는 ‘긴 제목’이 붙게 되는데, 이역시 마치 책의 ‘책 제목’ 처럼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이다. 그림 속엔 원, 삼각형 선들의 조합이나 특정한 색, 디자인된 텍스트 등을 여러 방식으로 교차, 나열하고 레이어링 시켜 완성되게 되는데, 그림이 하나하나 쌓여가며 작가만의 규칙이 되고, 그만의 도상적 기호로 자리 잡게 되어진다. 흥미롭게도 이런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작업 방식과는 다르게 장한이가 풀어내는 색과 형태들은 어딘가 촉감도 리듬감도 느껴지며 생동한 미감을 느낄 수 있고, 어딘가 유연하며 자연을 닮았다. 작가가 찾아낸 작가 삶의 태도의 방향 혹은 타협점, 다짐의 시선이 아닐까. 장한이가 쌓아가는 모든 책과 서고들을 응원하며 바라봐본다. 또 우리의 ‘마음 서고’는 어떻게 분류하며 채워나가야 할지도 고민해 본다.

1) 도상기호란 본디 외부세계의 실제 대상과의 유사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호이다. 지시 대상과 닮은 관계를 유지하는 기호를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작가의 그림으로부터 비롯된 도상학 기호들에 대한 합성어이다.
2) 작가의 노트에서 발췌 3) 나열식 책가도란, ‘서고’가 빠진 채 화면안에서 그림의 대상이 나열의 방식으로 배치가 된 책가도를 의미한다.
4) 서가식 책가도란, 벽장의 형태 그림안에 다양한 소품들을 배치하여 나타낸 책가도를 의미한다.
5) 벽작문 책가도란, 조선시대 때, 벽장 문의 형태를 따온 문살 무늬를 차용하여 그려낸 벽장 장식용 책가도이다.
조유경(유영공간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