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명상법 서문」, 박혜정
“명상하라.” 이것을 한 번도 제안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상은 자아를 발견하려는 사람, 현대사회를 지혜롭게 살고 싶은 사람, 혹은 그저 숙면을 원하는 사람에게 아주 쉽게 제안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명상의 도움을 받는가? 미국의 한 토크쇼에서 초월명상 전문가 밥 로스는 “바다의 표면에는 거친 파도가 있으나, 심해는 조용하다. 우리의 마음도 같은 방식이다(...) 파도를 잠재우는 것은 어려우나 초월명상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잠수해, 평온함에 도달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명상을 실천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후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명상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변화’는 여러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인으로부터, 매주 요가를 다니는 주변 지인으로부터 쉽게 언급된다. 그러니 명상이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듯하다. 그런데 명상은 왜 해수면을 완전히 벗어나기를 제안하지 않는가? 눈을 번쩍 뜨면 – 우리는 다시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일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한다.
⟪명상법⟫은 장한이와 원나래가 자신의 안팎을 가꾸는 삶에 관해 고찰한 회화로 구성되었다. 이 전시는 두 작가의 작업을 번갈아 살펴보며, 내면으로 향하나 결국은 외부세계에 도착하는 명상의 움직임을 체험할 것을 관객에게 권한다. 장한이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며,” 자아의 깊은 곳에서 느끼는 인간성의 감각을 그림으로 옮긴다.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자원이 된 시간을 생애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정서로 환원하는 회화를 그린다. 이때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그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대안적인 단위로서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가 활용된다. 〈짧은 시간, 긴 숨〉은 작가가 체감한 절기별 특징을 일정한 크기의 순지 위에 표현한 연작이다. 작가는 절기에 따른 감각을 옮겨 내기 위해 여러 기호를 끌어오고, 대상을 단순화해 재현하면서 일정한 리듬이 화면 전체에 나타나도록 한다. 여기에 여러 각도로 중첩된 짧은 붓터치가 더해지며 그림 속의 요소들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된다. 전체적으로 평평한 장면에 큰 서사적 흐름 없이 잔잔하게 반복되는 흔들림만을 보여주는 이 회화들은, 자연에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단순한 감각을 담아낸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연작 중 전시 기간과 가까이에 있는 아홉 절기에 해당하는 회화들을 선보이며, 이를 통해 관객이 계절의 감각과 정서를 복기하기를 제안한다. 나아가 〈서두르지 않는 시작과 멈추지 않는 끝〉에 작가는 이십사절기에서 사계절의 축이 되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상징들을 한 화면에 어우러지도록 그려 넣음으로써 한 해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이처럼 장한이의 작업에서의 ‘시간’은 과업과 일정표가 아닌 무위자연의 감각으로서 기록된다. 결과적으로 그의 회화의 목적은 자본화된 세상을 떠나 인간성의 깊은 구심점을 향해 침잠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모순은 자본화된 사회를 떠날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웰니스, 자기계발 같은 키워드로 둔갑해 현대인이라면 갖춰야 할 자질로 요구된다. 원나래는 “천천히 눈을 뜨며,” 이렇게 한 개인이 가꿔내는 삶이 사회적인 틀과 분리되지 못하고 이미지화되는 과정에 관심을 둔다. 작가는 식물을 가꾸는 취미가 소셜미디어에서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역사적으로 식물을 가꾸는 일은 정신을 수양하기 위한 일종의 수련이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식물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고자 식물을 기른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 한 미디어 문화 안에서 식물에 관한 취미는 각종 현대적 라이프스타일과 연계된 키워드로 분류되고, 이에 따라 유형화된 이미지로 소비된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을 소셜미디어의 피드 화면처럼 연출된 〈Rabbit hole.zip〉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회화 속 식물 이미지들은 실제로 작가가 소셜미디어 피드에서 발견한 사진들을 따와 재현한 것이다. 유행에 따라 비슷한 방식으로 연출된 화분들, 가장 잘 가꾸어진 상태로 전시된 식물의 모습이 각자의 화면 안에서 나타나지만, 전체를 한 번에 보게 되면 결국은 유사한 이미지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용자를 한군데로 몰아 넣어 유사한 정보만을 보게 하지만, 마치 새로운 정보를 지속적으로 접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펼쳐 보인다. 한편, 큰 인기를 얻었던 식물 박쥐란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 크롭(crop)한 이미지를 담아낸 〈Selfie of Staghorn Fern〉는 미디어 환경 안에서의 ‘셀피’ 문화를 빗댄 시리즈다.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 하나를 얻기 위해 연출과 보정, 반복을 거치는 셀피처럼, 박쥐란은 같은 크기의 패널에 조금씩 다른 형태로, 조금씩 다른 빛깔로 그려져 최선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위한 과정을 드러낸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가꾸는 움직임은, 가라앉기와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외부세계와의 연결고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상적인 이미지와 행동 양식을 치밀하게 요구받는 여성들이 내면의 자아를 헤아리는 일에 큰 관심을 두는 것은 예견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겪는 문제를 둘러싼 구조적인 틀과 싸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것은 꽤 오랜 시간과 힘을 들이게 되는 일이고, 그러다 힘이 빠져서, 그럴 힘이 없어서, 혹은 포기해서 여성들은 요가원으로, 상담센터로, 명상원으로 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원하는 옷을 걸치면서 이것이 나의 순수한 개성인지, 혹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에서 본 것의 흉내 내기에 불과한지 의심하게 되고, 요가를 수련하며 얻게 되는 잠시의 평화가 진정 나를 위한 것인지 당장 내일의 출근을 위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개인의 수련이 이미지로 소비되고, 소비된 이미지의 영향을 받아 수행이 행해지는 상황을 우리는 앞서 원나래의 작업에서 발견한 바 있다. 한편, 장한이는 자본화된 사회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감각을 그림에 함축하고자 하나, 기호와 패턴이라는 상업적 도식을 도입해 서술하면서 끊을 수 없는 외부세계와의 고리를 암시한다. 이러한 모순은 두 작가가 함께 만든 〈가꿈의 단편들〉에서 정과 반을 이루고 합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인 풀이 과정을 이루며 전개된다. 그야말로 명상을 위한 장이다. 여기서, 명상을 시도해보자. 그리고 또 의심해보자. ‘놀라운 변화’는 찾아오는가? 무엇을 위한 변화인가? 자 이제 천천히 눈을 떠 보자.
《명상법》
Meditation Manual
2025. 5. 18.– 6. 15.
원나래 X 장한이
Narae Won X Hani Jang
⟪명상법⟫은 장한이와 원나래가 자신의 안팎을 가꾸는 삶에 관해 고찰한 회화로 구성되었다. 이 전시는 두 작가의 작업을 번갈아 살펴보며, 내면으로 향하나 결국은 외부세계에 도착하는 명상의 움직임을 체험할 것을 관객에게 권한다. 장한이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며,” 자아의 깊은 곳에서 느끼는 인간성의 감각을 그림으로 옮긴다.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자원이 된 시간을 생애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정서로 환원하는 회화를 그린다. 이때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그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대안적인 단위로서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가 활용된다. 〈짧은 시간, 긴 숨〉은 작가가 체감한 절기별 특징을 일정한 크기의 순지 위에 표현한 연작이다. 작가는 절기에 따른 감각을 옮겨 내기 위해 여러 기호를 끌어오고, 대상을 단순화해 재현하면서 일정한 리듬이 화면 전체에 나타나도록 한다. 여기에 여러 각도로 중첩된 짧은 붓터치가 더해지며 그림 속의 요소들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된다. 전체적으로 평평한 장면에 큰 서사적 흐름 없이 잔잔하게 반복되는 흔들림만을 보여주는 이 회화들은, 자연에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단순한 감각을 담아낸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연작 중 전시 기간과 가까이에 있는 아홉 절기에 해당하는 회화들을 선보이며, 이를 통해 관객이 계절의 감각과 정서를 복기하기를 제안한다. 나아가 〈서두르지 않는 시작과 멈추지 않는 끝〉에 작가는 이십사절기에서 사계절의 축이 되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상징들을 한 화면에 어우러지도록 그려 넣음으로써 한 해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이처럼 장한이의 작업에서의 ‘시간’은 과업과 일정표가 아닌 무위자연의 감각으로서 기록된다. 결과적으로 그의 회화의 목적은 자본화된 세상을 떠나 인간성의 깊은 구심점을 향해 침잠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모순은 자본화된 사회를 떠날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웰니스, 자기계발 같은 키워드로 둔갑해 현대인이라면 갖춰야 할 자질로 요구된다. 원나래는 “천천히 눈을 뜨며,” 이렇게 한 개인이 가꿔내는 삶이 사회적인 틀과 분리되지 못하고 이미지화되는 과정에 관심을 둔다. 작가는 식물을 가꾸는 취미가 소셜미디어에서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역사적으로 식물을 가꾸는 일은 정신을 수양하기 위한 일종의 수련이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식물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고자 식물을 기른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 한 미디어 문화 안에서 식물에 관한 취미는 각종 현대적 라이프스타일과 연계된 키워드로 분류되고, 이에 따라 유형화된 이미지로 소비된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을 소셜미디어의 피드 화면처럼 연출된 〈Rabbit hole.zip〉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회화 속 식물 이미지들은 실제로 작가가 소셜미디어 피드에서 발견한 사진들을 따와 재현한 것이다. 유행에 따라 비슷한 방식으로 연출된 화분들, 가장 잘 가꾸어진 상태로 전시된 식물의 모습이 각자의 화면 안에서 나타나지만, 전체를 한 번에 보게 되면 결국은 유사한 이미지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용자를 한군데로 몰아 넣어 유사한 정보만을 보게 하지만, 마치 새로운 정보를 지속적으로 접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펼쳐 보인다. 한편, 큰 인기를 얻었던 식물 박쥐란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 크롭(crop)한 이미지를 담아낸 〈Selfie of Staghorn Fern〉는 미디어 환경 안에서의 ‘셀피’ 문화를 빗댄 시리즈다.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 하나를 얻기 위해 연출과 보정, 반복을 거치는 셀피처럼, 박쥐란은 같은 크기의 패널에 조금씩 다른 형태로, 조금씩 다른 빛깔로 그려져 최선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위한 과정을 드러낸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가꾸는 움직임은, 가라앉기와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외부세계와의 연결고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상적인 이미지와 행동 양식을 치밀하게 요구받는 여성들이 내면의 자아를 헤아리는 일에 큰 관심을 두는 것은 예견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겪는 문제를 둘러싼 구조적인 틀과 싸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것은 꽤 오랜 시간과 힘을 들이게 되는 일이고, 그러다 힘이 빠져서, 그럴 힘이 없어서, 혹은 포기해서 여성들은 요가원으로, 상담센터로, 명상원으로 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원하는 옷을 걸치면서 이것이 나의 순수한 개성인지, 혹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에서 본 것의 흉내 내기에 불과한지 의심하게 되고, 요가를 수련하며 얻게 되는 잠시의 평화가 진정 나를 위한 것인지 당장 내일의 출근을 위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개인의 수련이 이미지로 소비되고, 소비된 이미지의 영향을 받아 수행이 행해지는 상황을 우리는 앞서 원나래의 작업에서 발견한 바 있다. 한편, 장한이는 자본화된 사회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감각을 그림에 함축하고자 하나, 기호와 패턴이라는 상업적 도식을 도입해 서술하면서 끊을 수 없는 외부세계와의 고리를 암시한다. 이러한 모순은 두 작가가 함께 만든 〈가꿈의 단편들〉에서 정과 반을 이루고 합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인 풀이 과정을 이루며 전개된다. 그야말로 명상을 위한 장이다. 여기서, 명상을 시도해보자. 그리고 또 의심해보자. ‘놀라운 변화’는 찾아오는가? 무엇을 위한 변화인가? 자 이제 천천히 눈을 떠 보자.
《명상법》
Meditation Manual
2025. 5. 18.– 6. 15.
원나래 X 장한이
Narae Won X Hani Jang
글. 박혜정